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매진해야 한다. 모든 시간을 그것에 투자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할 때만큼은 오롯이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익숙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능숙한 사람을 보면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실패와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박수쳐 주고 싶다.
그렇게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어 있을 때, 문득 하나의 의문 혹은 두려움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밖에 잘 하는 게 없는데….’ 주변의 상황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을 때,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렇다. 이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하다. 열심히 오르고 올랐는데 눈앞에 절벽이 기다리고 있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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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너는 매우 혹독했다. 힘들어 죽겠다는 나의 상태를 살펴보는 듯 괜찮냐고 묻지만, 숫자 세기를 멈추지는 않는다.“열하나, 열둘.” 가차없다. 그럴 것 같아서 이 헬스장에 등록한 거고, 실제로 그래서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상체운동을 마치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생각지 않게 하체가 뻐근해 온다. 나는 분명 상체 지도를 받았는데 엉덩이와 허벅지에 통증이 있다. 하체를 하고 난 후라도 다를 건 없다. 이번에는 배와 가슴이 땡긴다. 운동을 잘못 한 것일까?
“배와 허벅지에 힘 주세요. 무릎 방향은 정면입니다.”
트레이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를 잡도록 지도했다. 비록 지금 지적한 곳 외에는 바로바로 자세가 풀릴지라도 말이다. 몸의 자세가 바로잡혀야 올바르게 힘이 들어간다.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 짧은 경력이지만 몇 명의 트레이너를 거치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올바르게 운동하기 위해 온 몸에 신경쓸 필요가 있었다. 엎드린다고 플랭크가 되는 게 아니었다. 누워서 바벨를 민다고 벤치프레스가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바른 자세로 온전히 운동을 하려면 몸 전체가 일을 하며 받쳐 주어야 한다. 상하체 상관없이 온 몸이 뻐근한 것을 보고, 아마도 나는 깨달은 건지도 모른다. 제대로 한다는 건, 나도 모르게 전신 운동을 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고. 모든 부위가 받쳐 주었기 때문에 특정 부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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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업무만 해 봤다고 다른 것을 못한다는 말은, 생각하기 싫거나 움직이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적어도 ‘해 보지 않아서 못할 것’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아무리 단순해 보이는 일을 하더라도 쪼개고 쪼개어 보면 실제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를, 제품을, 우리 회사를 어필해야 한다. 상사와 동료와 거래처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업무를 받으면 어떻게 할지 계획하고 시간을 분배하여 적절한 때에 반드시 실행한다.
한 가지 일만 하는 것 같아도 실상 여러 가지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던 거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업무들이 받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주력이 되는 업무를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했다면, 적어도 나는 여러 가지 업무를 진행해 온 것이 분명하다. 다른 모든 부위가 적절한 역할을 주었기에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