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

트망 2024. 2. 2. 13:02

규칙에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질서 있는 사회가 된다. 모든 규칙이 옳다고 할 수 없고, 모두에게 옳은 규칙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지키고 있고 지키고자 노력한다면 나름 유의미한 규칙이지 않을까. 그것이 개개인의 내적 욕망과는 조금 어긋나 있을지라도.

 

도로의 수많은 차들이 원하는 곳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공통된 규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도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없다면 질서는 사라진다. 한가로운 넓은 도로에서 유독 길게 늘어선 차선이 있을 때 그 줄이 어디로 향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맨 앞으로 가서야 끼어드는 차들은 늘 있다. 짜증은 나지만 한두 대 정도는 지켜볼 만하다. 문제는 그러한 차들이 많을 때다. 한두 대가 아니라 열 대, 백 대가 된다고 하면 나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다짐은 무너진다. 이제는 ‘아무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그것도 믿음이라면)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누가 더 빨리 잘 끼어드느냐의 문제다. 더 잽싸고 막무가내로 들이밀어야 한다. 그중 누군가는 크고 튼튼하고 비싼 차를 앞세울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차는 기회를 얻기 힘들다. 그러다 보면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가 될 거다. 물론 유쾌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다지 낯선 상황은 아닐 거라 확신한다.

 

남의 것을 빼앗지 말라고 배웠다. 타인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피해야 하며, 그것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매우 나쁘다고 한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남의 공을 가로채는 행동도 피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만들어 상대를 제압한다.

 

가끔 환청이 들린다.

“그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우리 만들지 말기로 하자. (물론 나는 가지고 있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그런 구식 공장은 없애기로 약속하자. (나는 이미 그 단계를 거쳐 다음 단계로 와 있으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대신 다른 것에서 불이익은 감수해야 할 거야.)”

 

애초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힘을 가졌을 때 옳고 그름을 따져 가며 갈팡질팡하지 않을 테고, 힘에 눌렸을 때도 억울한 마음에 괜한 저항 또한 하지 않을 테니.

 

“얘들아 이번 학기에는 ㅇㅇ이가 싸움을 제일 잘하니까 반장을 맡게 될 거다. 반항하지 말고 말 잘 듣도록 해, 알았지? ㅇㅇ이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다 주고. 뭐든 ㅇㅇ이한테 허락을 받도록 해. ㅇㅇ이는 우리반 규칙도 다시 정해야 한다. 어렵거나 귀찮은 건 친구들 시켜도 되는 거 알지? 마음에 안 드는 친구들은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급식도 맨 뒤에서 먹게 해. 안 줘도 되고. 너희들은 너무 억울해 하지 마라. 다 교실의 질서를 위한 거니까. 그리고 늘 하는 말이지만, 반장이랑 같은 대우를 바라면 안 돼. 평등은 너희끼리 찾는 거야. 반장이 우리반을 평등하게 만들 테니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보좌만 잘 해. 힘 있는 사람의 말은 잘 들어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