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인 걸 증명해 봐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만들어 낸 이야기를 진짜인 것처럼 퍼뜨린다. 기대했던 것보다 세상이 시끄럽지만 혹시 진짜가 아니지는 않을까 단 한 번의 의심도 검증도 없다. 어차피 세상도 나도 믿고 싶은 대로 보고 들을 뿐이니.
당사자는 거짓이라 외친다. 하지만 전하는 사람조차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던’ 처음의 이야기를 덮지 못한다. 그곳에 가지 않았음을, 관계하지 않았음을, 그런 일이 없었음을 밝히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게다가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건 당사자의 몫이 되어 버린다. 누군가는 ‘근거 없는’ 소문을 전하고 당사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이상한 모양새다.
시간이 지나고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났든 만나지 않았든, 그 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차고 넘치니까. 언젠가 그를 욕하던 사람들 몇몇이 이번에는 그를 옹호할 뿐이다.
일련의 부정적인 소문을 스치듯 듣고 본 사람들의 뇌리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새겨진다. 사실 여부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간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전부니까.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그들은 대부분 목적을 달성한다.
괴롭히기 딱 좋다. “나쁜 놈!” 했다가 들키면사실이 아니면, “미안.” 하고 발뺌하면 되니까.
뭐, 아님 말고.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시험지를 훔쳤다는 의심을 받는 주인공에게 선생님이 말한다.
“니가 증명해야지. 소문의 당사자니까.”
남의 일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 이 순간도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날 일이니. 그 대상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 뿐.
쉽게 말하고 쉽게 믿고 쉽게 전하고 쉽게 사과한다.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보면 알겠지.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지.
대한민국헌법 제27조 4항은 이렇게 말한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