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트망 2024. 2. 8. 15:43

몇 년 전 일. 전세계약 만료일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를 준비해야지. 약속시간이 가까워 오면 조바심을 느끼는 성격 탓에 몇 개월 앞둔 시점에 집주인과 통화한다. 계약한 날짜대로 집을 빼겠다고.

 

집을 알아 보았고 힘겹게 계약금까지 넣었다. 계약만료 얼마 전, 확인을 위해 통화한 집주인의 태도는 전과 달랐다. 재개발을 앞둔 건물이라 세입자가 잘 들어오지 않는단다. 그러니 보증금을 장담할 수 없단다. 묻고 싶었다. 그래서? 그게 끝이냐?

 

친구가 급한 일이 있다기에 몇십만원을 빌려준 적이 있다. 지금보다 없던 때였지만 있으나 없으나 내 삶에 큰 지장이 없었기에, 그리고 너무나 급한 일이라기에 몇 년이나 보지 못한 상태이지만 선뜻 계좌이체를 한다. 이후 몇 번 연락하는 동안 들을 수 있던 말은 “다음에” 뿐이었고, 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다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은 참 간사해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단다. 하지만, 역시 간사하여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일단 내 것처럼 느끼나 보다. 빌린 돈을 왜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가. 약속한 내용이 버젓이 적혀 있는데 왜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로 베짱을 부리는 것일까. 왜 빌려준 사람이 갚아야 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럴 거면 약속은 왜 하는지. 때로는 왜, 한쪽의 의무만을 강요하는지.

 

가끔 선불 결제를 이용했다. 돈을 먼저 내고 딱 그만큼만 사용하도록 하는 그것이 나름 좋았다. 비교적 안전했으니까. 끝난 후 미련 없이 일어서면 그만이다. 하지만 반대로 선불을 받는 건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에게 선불은 부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 들어온 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것처럼 바라보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큰 돈 작은 돈 구별 없다. 물론 마무리되기 전까지 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절대 내 손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듯이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불편한 거다. 끝날 때까지 내 것이 아님을 알지만, 행여나 내 것이 아닌 상황이 된다면 왠지 너무나 배가 아플 것 같다. 내 소유를 빼앗기는 것처럼.

 

그래도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영원히, 적어도 아직까지는. 갖고자 하는 욕심은 자연스럽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서로 간의 약속이고 사람의 도리다. 욕심도 선을 지켜 가며 부려야지. 선이 없으면 야생의 동물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