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트망 2024. 2. 12. 06:15

어릴 때는 관계 맺는 것에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낯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이미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핍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야 할 이유나 의무가 없었으니 어렵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잘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었다. 그때는.

 

관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아기는 부모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요소와 심적 안락함을 얻고 부모는 아기를 통해 삶의 활력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는다. 친구와 함께 하면 자칫 무료해질 수 있을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위로를 받는다. 직장인은 회사에 정신적육체적 노동력을 제공하고 회사는 직원에게 돈을 지불한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필요하지만 직접 할 수 없는 것을 제공받게 되고, 제공하는 이는 사회에 보탬이 되었다는 뿌듯함 혹은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위로를 받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강요가 아니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얻게 되는 것이 분명 있다.

 

나이가 차면 바라는 것이 보다 명확해진다. 대부분 목적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 돈, 정보, 노동력 등이 오간다. 그건 거래다. 거래이기 때문에 기대하거나 약속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 그 관계는 깨지게 된다.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거래 관계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래야 오래 지속된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내일 관계가 끊어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른 곳 다른 사람에게서 지금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명시적 거래 관계가 아닐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즐거워서 만나지만 나를 즐겁게 해 줄 의무는 없다. 내가 모르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반드시 정보를 주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기대했던 위로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목적 혹은 이유가 있지만 얻지 못할 때도 많다.

 

생각보다 많은 관계에 돈이 얽혀 있다. 상사나 부하직원, 거래처와의 원만한 관계는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 한몫 한다. 학원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물론 많은 회사가 직원 개개인의 복지를 위해 투자할 것이고 또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성적향상은 물론 밝은 미래를 바랄 것이며, 수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의 쾌유를 빌 것이다. 당연히 진심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돈이 없다면 관계는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교사와 의사의 사명 같은 걸 최우선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돈은 그만큼 중요하다. 손가락 빨며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양쪽 혹은 적어도 한쪽은 돈으로 그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관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 있다. 서열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그것은 직급이고 직책이며 계급이기도 하다. 그래서 ‘갑’이 있고 ‘을’이 있다. 상대적으로 더 쉽게 하는 쪽 혹은 더 힘이 있는 쪽이 있는 반면 무엇을 하든 더 어려워 하는 약한 쪽이 있는 것이다. 쉬운 쪽에서는 모든 것이 수월하다.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장난을 치고 화를 내는 것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사과도 쉽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어깨를 툭 치든 고개를 숙이든 민망한 표정을 짓든 바로 행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때로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본인은 아주 민망할 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은 절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반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어렵다. 상대방이 잘못을 해도 화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상대가 잘못을 시인하며 사과를 할 때 진심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사실 나의 화는 전혀 풀리지 않았더라도 억지 웃음을 지어야 한다.

 

원하지도 않는 곳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내 의견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만 줄곧 해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꼭 필요한 일인 걸 알지만 ‘언제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그것을 멈춤 없이 이어나가는 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어딘가에 나의 말을 들어 주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시덥잖은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욕지거리를 하더라도 주거니받거니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관계로 인한 그 피로감을 또다른 관계로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