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틀림, 선택
가치관은 강요할 수 없다. 같은 것을 대할지라도 그에 대한 중요성은 제각각이며 또한 추구하는 길도 다른 게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나의 가치관을 주입한다. 은근히 하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감쌀 정도다. 딱 한 번만 다시 생각했어도 절대 그러지 않았을 행동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멈춤을 하지 못하고 내질러 버렸다.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의 보호 아래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기를 벗어나면서부터 세상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정치다. 물론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것 하나 하나가 나의 삶과 관련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곳은 ‘대립’이 가장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보다는 비방이 앞선다. 의견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상대의 허물을 물어뜯는다. 실제로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대중의 시선을 그것으로 돌리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그 모습은 피곤을 가중시키기에 차고 넘친다. 더 큰 무엇을 위한 ‘상호보완’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대립한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누군가는 직장에서. 더욱 불행하게도 가족과의 사이에서 경험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건 대립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몰고 온다. 대립하는 상대는 (적어도 상징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내가 맞거나 옳으면 상대는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쓰러져야 한다. 덜 가져야 하고 덜 먹어야 한다. 혹은 조용히 해야 한다.
종종 있는 일이다. 서로 다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손익이 갈릴 것이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또 원하는 선택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만장일치를 믿지 않는 편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 이상의 의견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살아 온 환경이, 주변의 사람이, 지나 온 경험이, 그래서 그 모든 것에 대한 고민이 다른데 어떻게 일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착각을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나의 경험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에 반대하는 너는 ‘틀렸다’ 결론짓는다. 네 편과 내 편이 싸운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비난한다. 남자와 여자가 각을 세우고 노인과 청년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틀리다’는 표현이 난무한다. 나와 다르면 틀린 생각이다. 종종 주관식 답안에 대해서도 틀렸다고 한다. 심지어 ‘틀린그림찾기’도 있다. 버젓이, 그리고 여전히.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따지려면 처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과연 틀린 것인지 다른 것인지. 가치관의 차이인지 그저 방법의 차이인지부터 보아야 한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 틀린 건 별로 없고 그저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상대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건 그저 이기고 싶어서이거나, 그저 이기고 싶은데 사실은 할 말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개성을 존중하자고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갇혀 있다. 창의성을 키우자고 말하며 같은 교육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으로, 나의 개성은 존중 받고 싶은데 다른 이의 그것은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시대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버릇없는 요즘 애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나만 옳으니 상대는 모두 틀렸고, 나도 상대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리 만무하다. 대립의 반복이다.
행복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개인이 중요한 사람이 있는 반면 단체를 더욱 중요시 하는 사람도 있다. 다수결에 쉽게 따르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과연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인가.
대부분은 대립의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언제고 그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다 내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그맘 같지 않기에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노선을 정해야 한다. 좋든 싫든 그대로 맞춰갈 수 있다. 설득을 시도할 수 있다. 마주하지 않고 돌아설 수도 있다. 물론, 싸울 수도 있다. 몇 가지는 매우 쉬운 반면 어떤 선택은 대단히 어렵다. 평정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 있다.
‘그럴 수 있는 일’을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분노가 앞설 것이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작정 제지하려고만 들 것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한다면 평정심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