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배움에 목적이 있다면

트망 2024. 3. 3. 07:10

오래 전 이런 유행어가 있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말이다. 우리는 늘 등수나 등급이 매겨지는 삶을 살아 왔으니까. 일등은 아니더라도 2등 혹은 3등은 들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순위권. 하지만 그들이라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3등과 2등에게는 특명이 떨어진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1등이 될 수 있다. 1의 칭찬과 99의 독려다. 물론 1등도 힘들다.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까. 잘 지켜야 한다. 처음은 칭찬을 받지만 다음부터는 당연한 게 된다. 2등과 3등은 눈에 불을 켜고 내 자리를 노린다. 1등을 했다가 2등이나 3등이 되면 혼이 난다. 일등을 유지해도 본전이다. 단 한 번 혹은 두 번으로 이 자리는 이미 내 것이므로, 혹은 내 것이라고 주입당하므로. 아마도 세상에 행복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는 낯설거든. 금메달리스트가 입에 착 붙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너무나 맞아떨어지는 비유다. 아니 이건 비유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한 것일 뿐.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일등을 기억한다. 일등이 임펙트 있으니까. 잘 모르는 중에도 일등의 이름은 여렴풋이 기억해 낸다. 일등을 할 만한 사람 혹은 일등이 된 사람의 이름을 주구장창 들었을 테니 머리에 박힐 만도 하다.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언젠부터인가,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모든 것의 목적이 일등 혹은 최초 혹은 첫 번째로 수렴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 배움의 목적도 그리 보인다. 몇 점 맞았는지, 몇 등 했는지. 이어서 어느 곳에 취직을 했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그런 것에 등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완전 오산이다. 등수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그냥 그런 직장 그저 그런 직업이 있고, 좋은 직장과 직업도 있다. 최고라 칭해지는 것도 있고 반대로 (직접적으로 입밖에 내기는 조심스러워들 하지만) 천하게 보는 직업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배움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라의 일꾼, 행복한 세상, 안정된 삶, 개인의 행복 등일 것이다. 학교의 목적도 그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되기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던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봐야겠지만.

 

그다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기에 주입식 교육, 성적 위주의 교육 과정 혹은 이런 분위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 안에 있었지만 그 안에 있지 않은 듯도 하니. 하지만 적어도 그것에 물들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성적으로 반을 나누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대우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비교적 일찍 생각을 바꾸기는 하였으나,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이 좋은 거라고 여긴 적도 있다. 그것이, 소위 ‘좋은 대학’이 있다면 ‘안 좋은 대학’도 있다는 뜻임을, 그렇게 하다 보면 너무너무 혹은 가장 안 좋은 대학도 있음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 아닐까 한다. 기본 소양을 갖추어 잘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것.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알아두면 좋은 것을 알려주는 게 학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러하겠지. 하지만 그 행복의 기준이 내 생각과 너무 다른 것 같다. 점수가 높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누구나 알 만한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이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여전히 사교육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옆집 아이의 학원행에 불안함을 감출 수 없는 부모의 맘이 이해된다.

 

성적이, 등수가 행복이라면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다. 행복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고 선을 그어 놓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일등 이등 삼등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불행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물론 상위 등수를 벗어난 학생은 불행할 것이다. 상위가 아니면 불행하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과정과 도구가 목적이 되는 상황은 빨리 돌이키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