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작합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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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며칠 전 밤이었다. 집에 돌아오기 위해 한참을 운전해 피곤이 극에 달하던 중, 가로등도 드문 왕복 1차로에 가까운 길에 접어들었을 바로 그때였다. 반짝. 가로등이 나타날 타이밍이 아니었다. 가로등 불빛도 아니었고. 반짝. 오른쪽 대각선, 같은 방향이었다. 반짝. 이상하게도 정확히 같은 곳이었다. 아니 같은 방향이었다. 유리에 뭐가 묻었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아무것도 없는데…. 반짝. 뭐지? 순간이지만 사람을 본 것 같다. 코 였을까? 반짝. 눈! 분명히 사람의 눈이었다! 동공이 커진 파란 눈동자. 하지만 이후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아니면 몸이 허해서 헛것을 보나… 혹시 귀신인가?! 웃기지도 않네. 귀신을 봤네 외계인을 봤네 ..

작작합니다. 2024.03.29

주인공

그날이 왔다. 지난 달부터 목이 빠져라 기다린 그날. 사실 그다지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옷을 입었다고 특별한 게 아니잖은가. 말을 한다고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런 거다. 그냥 있는 그런 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뭐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닌 날이 꽃처럼 환하리….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한다. 한 시간 일찍 출근이 나의 개인적인 목표이자 루틴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천천히 천천히.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가볍지만, 말리면 안 된다. 오늘 나의 목표는 제시간 출근이다. 그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랄까. - 지난 달 2일은 부장님의 생일이었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주말 등산도 함께 다니곤 하는 우리의 딸랑이 팀장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깜..

작작합니다. 2024.01.30

추적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서점과 시청을 거쳐 백화점까지 정신없이 쫓아간다. '놓치면 안 돼. 놓치면 안 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는 것. 그러면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여야 한다. 평범한 행동을 해야 한다. 눈에 띄지 않도록, 눈에 띄더라도 기억에 남지 않도록. 조용한 추격을 시작한 지 세 시간째. 한적한 골목. 그가 통화하는 듯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내가 지나가는 걸 봤다고?” 갑자기 몸을 돌려 내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아차, 몸을 숨길 곳이 없다. 눈이 마주친다. 식은땀이 흐른다. 알아보면 어쩌지? 심장이 요동친다. 그렇다고 뒤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그래 그냥 지나치자. 과감해야 한다. 그대로 직진하여 그를 지나친다...

작작합니다. 2024.01.25

거리

“오 잘됐다!”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한 거야?” ‘왜 너만 됐냐고….’ “멋진데!” ‘나보다 못한 놈이었는데….’ “축하해. 언제 한턱 쏴라.” ‘아 자존심 상해.’ 진심으로 화들짝 놀랐다. 아마 너도 느꼈겠지. 끓어오르는 부러움과 약오름을 숨기려는 호들갑떠는 나의 모습. - 오랜만에 H와 술 한잔 한다. “K는 잘 지낸대?” 순간 숨이 멎는다. 내가 K를 만난 걸 알고 있었나? 사실 그냥 마주친 거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난 K를 좋아하지만 마주쳤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K의 잘 지냄은 곧 나의 잘 못 지냄과 연결될 것이므로. 하지만 속시끄러움이 멈추지 않는다. 그 사실을 숨기는 나의 모습이 나의 못 지냄을 너무나 선명하게 증명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 며칠 전 저기 마트 앞 ..

작작합니다. 2024.01.23

선택

“맘대로 해!“ 결국 말해 버렸다. 꽁꽁 숨겨 두었던,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마음. 유난히 맑은 날, 역시나 늦은 너. 괜찮다 말한 나, 웃겨야 했던 나. 무엇이었을까 너와 나의 문제는. “떡볶이 먹을까?” “그다지. 다른 거 없어?” “뭐 먹고 싶은데?” 잠깐의 침묵 속에 흩어지는 너의 한숨 소리. “왜 맨날 나만 선택해?” 선택에 애를 먹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이미 수없이 들었던 말. 그날따라 날카로웠던 걸 눈치 못 챈 나의 탓일까. 또 다시 굳어버린 나를 기세 좋게 몰아붙인 너의 탓일까. 네 탓이라고 하고 싶지 않아. 물론 내 탓도 아니지. 그저 조금 엇갈렸을 뿐이야.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하고 싶었어. 후련하게, 시원하게. “어차피 니 마음대로 할 거였잖아!” 미안했지만 미안하지 않았어. 아..

작작합니다.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