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어제 주문한 택배가 오지 않는다. 물건 발송이 안 되었나? 주문을 잘못 넣었나? 혹시 주문한 줄 알고 결제 없이 화면을 내려 버렸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은 아니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빨리 받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음식을 시킬 때만큼은 아니다. 보통은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 후 주문을 넣으니까 조바심은 배가 된다. “왜 이렇게 안 오지?”를 수십 번 중얼거린 후에야 음식을 받는다. “휴- 쓰러질 뻔.” 한창 장맛비가 쏟아지던 때였다.
텔레비전에 몸이 아픈 아동의 사연이 나온다. 경제력이 좋지 않은 집. 하늘도 무심하지 부모도 병원 약을 달고 산다. 일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아이 병원비는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벅차다. 혀를 차고 한숨을 쉰다. 슬프다. 채널을 돌리니 어느 지역의 자연재해 뉴스가 나온다. 차들이 둥둥 떠다닌다. 사람이 쓰러지고 휩쓸린다. 집을 잃은 사람이 수만 명이고 생명을 잃은 사람이 수백 명이다. 기도할 줄 모르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시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빨리 구할 수 있기를, 피해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차, 드라마 할 시간이다. 찡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로맨틱코미디다. 논객처럼 혹은 관객처럼 빠져들어 두 시간을 보낸다. 역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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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보다 그들의 끼니가 중요하다. 나의 10분보다 그들의 생명이 더 무겁다. 나의 웃음보다 그들의 안전이 더 주목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삶에서 허덕이더라도 나는 맛있는 음식을 빠르게 먹고 싶다. (어쩌면) 세상이 두 조각 난다는 위협이 있어도 당장 즐거운 것을 보고자 한다. 그들의 고통을 알겠고 가늠하겠지만, 내 일은 아니니까. 딱 요만큼만 안타까워하고 잊는다.
장애학교를 세우고자 무릎을 꿇은 부모들, 크나큰 재난 앞에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유가족들, 직원을 소모품처럼 쓰는 기업에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지나치는 자들의 무관심을 보며 삭막한 세상이라고 욕할 수 없다. 그 모습은 나와 닮았으니까.
그들의 목숨보다 내 몸의 작은 생채기가 더 아픈 법이다. 누군가 죽어 나가도 내 앞의 일이 가장 중요한 거다. 하지만, 때로는 그 당연함을 벗어나길 바란다. 그 당연함이 끝을 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관심 역시 돌고 돌아 나에게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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