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욕심

트망 2024. 3. 1. 07:47

욕심은 끝이 없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크게 자라곤 한다. 오늘 산 옷은 내일이면 헌 옷이 되고, 어제 먹은 새로운 음식은 오늘이면 더이상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제보다 많이 얻은 돈을 ‘많음’으로 느끼는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다. 새로운 것, 평범하지 않은 것, 더 많이 원하는 마음을 버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끝이 있는 욕망도 있다.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그중 하나다. 잘 한다, 좋다, 보고 싶다 등 나의 소중함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투명인간,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의 존재를 인정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다.

 

크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때론 ‘나’라는 사람을 인지해 주는 것으로 족하다. 말을 걸어 주고 말을 들어 주고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으면 된다. 사람 곁에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주인공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된다.

 

누군가를 깔아뭉개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 있다. 돈만이 힘이고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부하직원을 하청업체를 종 부리듯 한다. 음식점 종업원을 택배노동자를 하찮게 대한다. 나이 어린 사람을 하대한다. 일단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갑질, 꼰대질이다. 이 ‘질’들의 특징은 이유가 없거나 일관성이 없는 데 있다. 약하면 맞는 거다. 어쩔 수 없다. 강자는 약자를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며 자신을 휘두르는 상대적 강자의 막무가내 행동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면 할말이 없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정의 욕구를 엿본다. 대우 받고 싶지만 사람들은 나를 대우해 주지 않는다. 불안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돈으로 찍어 내린다. 권력을 휘두른다. 그제서야 그들은 나에게 굽신거린다. 나를 칭찬한다. 결정적으로 나를 ‘본다’. 모두에게 혹은 불특정인에게 대우 받고자 하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더 큰 문제라면 그것을 ‘인정’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결핍은 욕심을 부른다.

 

반면 특별히 인정 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은 이미 어디에선가 인정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게 인정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곳에서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덜한 것이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나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면 더 큰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람이 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움에 목적이 있다면  (0) 2024.03.03
쓰다  (0) 2024.03.01
결혼은 미친 짓이다  (2) 2024.03.01
가져가야 할 것들  (0) 2024.03.01
아주 작은 순간  (0) 202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