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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알게 되어서 좋다

부모님댁에 들르면 온갖 채소를 받아 온다. 깻잎, 무, 양파, 고추, 상추, 대파, 쪽파, 감자, 마늘, 고구마…. 계절에 맞는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임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어렸을 땐 파, 마늘을 좋아하지 않았다. 맵고 아리기만 한 걸 먹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치에도 들어가고 찌개와 국에도 빠지지 않았지만 익숙해질리 없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게 가풍이었기에 가능한 모두 먹으려 했지만, 사실 슬쩍 빼 놓고 싶었던 적이 많다. 스물넷 여름이었다. 친구와 길을 가다 고개를 돌렸는데 종이에 적힌 큼지막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콩국수 개시” 기억하기로 음식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먹고 싶다고 생각한 첫날이지 싶다. 웃긴 건 이전에 콩국수를 사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

바람이 분다 2024.04.06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

입맛에 맞으면 맛있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맛이 없는 건줄 알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이제 고작 몇 번이지만, 나는 가끔 이렇게 음식평을 한다. “내 입맛은 아니지만 맛이 좋네.” 십여 년 전이라면 이 말은 거짓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이다. 나와 맞지 않음은 분명한데 맛은 괜찮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맛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이지만 나의 느낌은 실제다. 나의 입맛과 그 맛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나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나의 본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지 않으리라는 우려를, 나 역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종 거짓을 보이고 거짓을 말한다. 어른이 되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전에는 드러내기 싫었던 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구나 다르다는 ..

바람이 분다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