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다 2

쓰다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이 귀찮은 것을 왜 하고자 하는가. 아마도 나는 무언가 일목요연하게 적어내려감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듯하다. (물론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두드리는 것만으로 글자가 완성되는 것보다야 펜을 들고 슥슥 써내려 가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만족보다 귀찮음이 더 크니 과감히 양보한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내 머리를 박차고 나와 지면 혹은 화면에 글자라는 형태로 정렬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한다. - 곧잘 잊는다. 사야 하는 것, 챙겨야 하는 것, 해야 하는 일을 잊는데 선수다. 어제 먹은 반찬을 기억하는 것도 나에게는 일이다. 물론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니 더욱 큰 문제다. 내가 가졌던 생각, 내가 가지려는 다짐도 잊어버린다. 어느 날 무언가에 꽂혀 앞..

바람이 분다 2024.03.01

잊기를 잘했다

# 이 음식점은 2년 전 네 생일이던 xx월 xx일 오전에 배가 살살 아파왔음에도 너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못이겨 30분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갔는데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물컵에 고추가루가 묻어 있어 바꾸어 달라 했더니 투덜대며 응대하던 그 모습에도 인터넷 맛집 평가의 추천 수가 증명해 줄 것이라며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두 주먹을 움켜쥔 나를 달래던 네가 추천요리를 시켰고 무사히 음식을 받게 됐지만 한두 젓가락 맛을 본 서로의 눈을 보며 말없이 이건 절대 아니라는 의견일치를 보았기에 반 이상 남은 음식을 두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럼에도 음식이 어떠셨냐는 사장의 가식처럼 느껴지는 웃음 앞에 역시 같은 류의 미소를 지으며 맛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남겼다는 누구도 믿지 않을 발연기를 펼..

바람이 분다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