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약속을 어떻게 잡는가. 모르는 길을 어떻게 찾아가고 남는 시간에는 또 무엇을 할까.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일할 때 놀 때 화장실에 잠자리에 늘 함께 해야 마땅하다.
실수로 휴대폰을 안 가지고 나간 날은 왠지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지는 않았을까, 급한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루종일 온갖 상상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각종 어플 아이콘 옆에 뜬 몇 개의 알림 숫자 뿐이다. 그것도 반갑다고 부랴부랴 터치. 낮 시간 동안 걱정했던 이유 따위 중요치 않다. 드디어 휴대폰과 조우했으니.
휴대폰이 생긴 이후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후로는 더더욱. 사무직 같은 경우야 스마트폰에 노트북을 더하면 어디서든 상당히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 정보 검색, 은행 업무, 물건 구매, 영상통화, 이메일에 게임도 할 수 있으니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전기, 자동차, 에어컨은 어떤가. 여름이면 모든 건물에서 에어컨을 틀어 준다. 어딘가에 가야 하는데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다. 거기에 전기가 없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사는 곳의 거의 모든 것이 멈추게 될 테니.
익숙함은 당연함이 된다. 당연해진 그것은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불편함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없거나 전기가 나간다면 견디기 힘들다. 그런 것들이 없던 과거의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물론 별일 없이 잘 살아왔다. 집전화로 약속을 잡고 친구를 만났다. 선풍기만 있어도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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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비해 절차가 간결해지거나 시간이 단축되거나 힘이 덜 드는 것을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것에 익숙해지면(신기하게도 단번에 익숙해진다.) 어제까지 행했던 모든 것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인가. 그러한 방향이 항상 옳은 것인가. 머리와 몸과 시간을 덜 쓰는 것을 ‘효율적’이라 한다지만 정말 그러한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간결하고 빠르고 쉬운 게 편한 건 사실이니까. 인간이란 적응 또한 빨라서 그 ‘편함’이 그저 일상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금방이어서 내일은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테니.
걱정이 많아서일까 믿음이 없어서일까. ‘언제나’ ‘어디서나’ ‘반드시’ 그 상태가 유지될 거라 확신하지는 않는다. 세상이 혹은 내가 그러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 역시 편한 게 좋아 지금을 누린다. 하지만 삶은 모르는 거다. 잘 걷다가 고꾸라질 수도, 앞으로 걷다가 잠시 뒤로 걸을 수도 있다. 세상이 반드시 앞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처럼.
지금을 익숙하게 살고 있지만 내일은 어제에 적응해야 할 수도 있다. 더 복잡하고 더 느리고 더 힘이 들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불평하는 순간 불편함은 배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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