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아내와 싸울 때 난,

트망 2024. 1. 8. 17:48

아내와 싸울 때 난, 바보가 된다. 이 상황 자체가 나 때문이라고 해서 그렇다. 나 때문이라니 일단 미안하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는다. 왜 그랬냐 자책을 한다. 그런 정리의 시간 속에서 나는 바보가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왜’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가.’ 이때부터는 나도 살짝 도끼눈을 뜬다. 말을 멈춘다. 조금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이내 머리속을 헤집으며 아내의 잘못을 찾는다. 똑같은 잘못을 했던 아내를 기억해내려 한다. 지금과 다른 행동과 말을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이거다 싶은 것을 찾은 후에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러고 있다. 반박하지 못하도록 문장을 다듬고 다듬는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여기에서 멈춘다. 나의 논리와 의견이 맞든 틀리든 그렇게 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왜 그랬냐”며 성내는 사람에게 “그럼 너는?”이라고 말하는 건 싸우자는 것과 같다. 반박은 곧 나에게 돌아올 것이고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다.

 

이런 반복 속에서도 나는, 순간 이기고 싶어 한다. 내 말이 맞기를 바란다. 내 말에 수긍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일들 투성이다. 그것 이겨서 무엇 하겠는가. 승자의 영광은 찰나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이긴들 이긴 게 아니다. 내가 아내와 사는 이유가 아내보다 위에 있기를 바라서는 아니다.

 

잘 되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매끄럽지도 않다. 늘 그 ‘가짜 승리’에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나는 함께라는 의미를 알고 있다. 싸움의 끝에서야 정신을 차리는 게 문제이지만, 적어도 무엇이 옳은 행동이었을지 고민하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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