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남편의 변

트망 2024. 2. 13. 15:02

“죄송한데 아내에게 물어봐 주시겠어요?”

나의 머리를 만지려던 디자이너는 저쪽 자리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녀온 후 가위를 든다.

 

남편은 아내에게 묻는다. 무엇을 사 와야 하는지, 어떤 걸 먹고 싶은지, 어떤 옷을 입는 게 나은지, 머리는 어떻게 깎는 게 좋은지. 아내는 대부분 꼬박꼬박 일러 준다. 원하는 바가 있으므로. 물론 귀찮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물어 봐야 하는가. 물건을 사러 보냈는데 전화해 사야 할 것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 “이럴 거면 내가 가지.” 하기도 하고.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들으려 한다. 어느 브랜드의 어떤 캐찹을 몇 개 사야 하는지, 지금 정확히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내가 어떤 옷을 입고 머리를 어떻게 깎는 것이 보기도 좋고 어디 내 놔도 그나마 봐 줄 만한지 의견을 듣고자 한다. 물론 귀찮을 걸 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요구를 묻는 거다. 이왕이면 내 의견보다 아내의 의견이 나을 것 같아서다. 아내의 선택에 따를 용의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것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왕이면 아내의 의견을 살피는 거다. 아내가 귀찮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남편의 의도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남편이 (누가 보든 당사자가 결정해야 할, 혹은 그래도 상관 없을)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형식적으로라도 아내에게 묻지 않고 결정한다고 했을 때, 결혼 전과 다를 게 없다.

 

아내의 취향과 방향성에 맞추고자 하는 남편의 의지일 수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게 가정에 더욱 이로우리라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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