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정신분석 입문]을 읽고 있었을 때였다. 물론 이해가 되어서 읽던 건 아니지만. 친구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 보느냐는 표정.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나에 대해서도 너에 대해서도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을 혹은 하고 싶지 않을 일들이 있다. 공무원, 종교인, 군인…. 내가 가진 그 무엇도 그것을 선택지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능력이 되고 상황이 급박하다면 세상 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천지개벽할 만큼의 변화가 일지 않는 이상 나의 일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이십대 중반에 만났던 사장님은 관공서 일을 하면서 뿌듯하지 않느냐고 내게 묻곤 했다. 그 발언에 진심이 담겼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뿌듯했다면 문제 없이 일을 끝마쳤다는 사실 하나였을 거다.
세상의 일들은 모두 중요하다. 또 소중하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알리고 제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는가.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가.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비교적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수많은 벽과 마주하면서 꽤나 슬프게 여겼지만, 사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몇 개라도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세상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째서 저것에 그리 열심인 걸까. 어떻게 저렇게 집중할 수 있는 걸까. 저 어려운 것에, 저 지루한 것에, 저 힘든 것에 노력할 수 있는 힘은 무얼까. 공감은커녕 이해하기도 힘들다.
물론 그들의 노력이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이 힘을 모아 그리로 몰아 넣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우연과 함께.
출근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면 내가 사는 곳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들과 나는 반대로 길을 떠난다. 움직임이 괴로울 때 (사실은 출근이 괴로울 때) 그들과 나의 직장이 바뀐다면 서로 편한 것이 아닐까 되도 않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지금의 삶은 없다.
관심 있는 대상이 다르다. 잘 하는 것이 다르다. 둘러보는 곳이 다르다.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그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그래서 내가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의 경쟁률이 딱 그정도인 거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어느 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다.
그대와 내가 같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