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도 한두 번이다. 싫은 말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잘 잊기 때문에 나름 적어보기도 하지만 정교하게 패턴화되어 있지 않은 덕에 ‘적은 것’조차 잊거나 잃는다. 그래서 또 물어본다. 가끔은 기억해 내지만 그래도 묻는다. 정말 그것이 맞는지 확인한다. 오래 전 직장에서 고객의 발주 내역을 마지막으로 확인할 때는 가급적 문자로 하곤 했다. 가능한 모든 내용을 꼼꼼히 적어서 마지막 확답을 받는 것이다. 내가 놓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놓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함께 체크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정말 모를 때가 문제다. 몰라서 물어보는데 화부터 낸다. 물어보면 화낼 거라는 걸 이미 알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물어봤다는 건 너무 급하거나 혹은 물어볼 사람이 정말 없어서일 것이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 화를 내는 사람에게 다시 묻기도 어려워 어영부영 넘어간다. 결국 해야 할 것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제대로 못 하게 된다. 그 질문은 결국 다시 돌아온다. 더 큰 스트레스와 함께.
듣는 입장에서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도대체 내가 말할 때 무엇을 들은 것인가. 몇 번을 말했는데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인가.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집중을 하고 안 하고와는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확실하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손에 닿는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것처럼, 조금 전에 잠근 문을 두세 번 확인하는 것처럼. 당사자도 피곤하다. 가끔 그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벗어나 보려 달리 행동해 보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사람의 외모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것 중에 제일이다. 늘 보는 친구의 머리 길이가 어떤지 안경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이십대 초반에 알아버렸다. 대신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은 오래 기억한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잊어버리지만 그때 받았던 느낌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반면 외모는 (누군가를 보며 잘생겼네 못생겼네 하는 것과는 별개로) 기억에 그다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기억에도 우선순위가 다를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다고 했으니 잘 기억해야지, 이건 그다지 급한 것도 아니고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니 대충만 봐 두자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를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 하나가 공교롭게도 이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상대하며 화가 치밀어오를지 모른다. 알지만, 나 역시 어느 부분에서는 그러하지만, 어떤 위치 혹은 상황에서는 내가 큰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지 다짐해 본다.
순간의 감정으로 대처했을 뿐이라고,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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