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것이 아니다
“저는 오이를 못 먹는데 오늘 한번 먹어 보려 합니다.”
호기롭게 오이를 집은 그 병사는 오이를 한 입 물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녀석이 이상하게 보였다. 앞뒤 없는 그 말과 행동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벙벙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했다가 ‘뭔 놈이 오이를 먹고 헛구역질을 하냐’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다른 녀석이 우유에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우유에 밥이라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세상에는 이해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날의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이해해 보려고 했다. 아는 것이 많거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그래서 기어코 ‘이해했다’는 착각이라도 얻어야만 했다. 무엇을 대하든 내 속에서 ‘그럴싸한’ 결론을 얻고자 했다. 우스운 일이다. 내가 뭐라고 그걸 다 알까. 사실 이해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자기만족일 뿐이다.
우유에 밥을 말아먹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축구를 싫어하는 것, 친구를 안 만나는 것….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판단한다. 저울질한다. 있지도 않은 무게와 부피를 재고 맛을 보는 시늉을 한다. 어차피 기억도 못할 거면서 이름을 정하고 분류해 놓는다. 종종 판사가 되어 ‘땅땅땅’ 의사봉을 휘두른다. 곧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렇게 뭐라도 된 것처럼 재고 판단하지만, 사실 나의 모습이 가장 난해하다. 무언가 새로운 길을 걸어 보고자 수없이 말하고 바라지만 오늘도 어제와 같은 행보를 보인다. 다름과 틀림이 같지 않음을 말하지만 여전히 얼굴 찌푸리고 손사레 치는 경우가 많다. 읽지도 않을 책을 수집하듯 구매하던 나의 모습은 구두나 운동화 혹은 우표를 사 모으는 일과 다름 아니었다. 수집하는 것이 목표인 휴대폰게임들과 비슷해 보인다. 화면 속의 화려한 아이콘들과 나의 책이 얼마나 다를까.
최근에 안 사실인데, 나 역시 수집광이었다. 자료수집을 무지막지하게 한다. 글을 쓸 때 봐야지, 운동할 때 봐야지, 공부할 때 봐야지 하며 컴퓨터, 휴대폰은 물론이요 메모지에도 저장하고 적어댄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번뜩! 이제는 있는 자료를 봐야지 하고는 나의 흩어진 메모들, 북마크들을 본다. 하- 너무 뒤죽박죽이군. 정리해서 보면 좋겠지? 하고는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너무 많아서 모두 정리하지는 못한다. 다음에 이어서 해야겠다. 그리고는 또 잊는다. 나의 정리는 ‘정리를 위한 정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시 그저 수집일 뿐이다.
모두 자신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뭐 어떤가.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음을 넘어서 손사레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피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눈살 찌푸리는 것도 피해이니까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세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늘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말로 그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적응이 안 되어서 싫은 것인지.
기호
공식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인 스무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술집을 전전하며 술을 마셔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서도 술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그 얼큰한 자리가 좋았던 것 같다. 어색한 사람과도 웃고 떠들 수 있는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빠질 수 없었다. 얹혀 살고 있는 이모댁과 학교의 거리가 지하철로 한 시간 사십 분 거리였음에도. 처남의 주량을 늘리겠다는 묘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던 매형을 피해 피시방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으니까. 물론 매형은 살갑게 대하려는 것이었으나 나는 그것조차 어려웠을 때였다.
처음 술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알코올램프의 알콜이었다. 이런 걸 마시다니…. 술이 달다고 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보통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게 나쁘거나 이상한 건 아니다. 대부분이 술을 마신다는 것과, 그것 외에 다른 것을 못하는 것이 이상한 거다. 그들은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것일까? 혹 자신의 진짜 기호를 희생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편견
군대에 그런 고참이 있었다. 열심히 후임을 갈구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래서 (이제와 말이지만 매우 안쓰럽게도) 후임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고참이 있었다. 어느 날 경계근무 조가 나왔는데 내가 그와 함께 근무를 서게 되었다. 그것을 본 다른 선임이 내게 이런 말을 남긴다. 근무 설 때 분명 이러저러한 자기 자랑을 할 것이라고. 예상대로였다. 고참은 동생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고 등등. 당시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선 이등병이었음에도 그 ‘모든’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십 년 이십 년 지나고 보니 그중 하나라도 진실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 다단계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시작은 지인(그때까지는 지인이었다.)의 아르바이트 요청이었다. 전날 미리 가서 술을 한잔 하다가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그놈 체면도 있고 은근 호기심도 생겨서 “그래 며칠만 들어나 보자” 약속한다. 술자리가 끝나고 잠을 자기 위해 어느 빌라로 들어갔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왼쪽 방엔 남자들이 오른쪽 방엔 여자들이 수두룩하게 자고 있었다. 어찌어찌 그 사이에 끼어 잠을 자고 다음날 오전부터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였다. 무엇일까 궁금했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눈에 보인 것은 그저 사기꾼 뿐이었다. 다단계에 대해 익히 들었던 무서운 소문들이 그제야 머리에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잘 나갈 수 있을까 하루종일 고민만 했다. 맨 앞에 정자세로 앉은 채로. 걱정과는 달리 그날 저녁 바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정장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혹은 승합차를 함께 타는 모습을 보면 여지없이 다단계를 떠올리곤 했다. 나름 정리된 그들을 구별하는 어떤 느낌이 있지만, 오랜만에 전화를 건 지인에게 “너 혹시 다단계냐?” 물었다가 그렇지 않다는 대답 이후 다시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은 경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촉이 모두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사실 나는 굉장히 진한 색안경을 낀 사람이다. 벗으려고 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경험한 일들,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판단이 정확해진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무리 예리하다한들 세상에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반드시’ 그러한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안경은 시시각각 색을 바꾼다. 때로는 무지갯빛이며 때로는 잿빛이다. 안경이라 표현하지만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려스럽다. 만에 하나라도 내 판단과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전해 준 이일까 그것을 그리 판단한 나일까. 적어도 판단의 대상이 되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색안경에서 벗어날 자신은 없다. 다만 그 사실을 인지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걸 알아야 손이 남을 때, 그 손에 힘이 있을 때, 그러고자 하는 의지를 보태 한 겹 한 겹 벗겨낼 수 있을 테니. 시시각각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관대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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