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점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의 지식, 삶, 정체성이 담긴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책을 집어든다. 내용은 짧았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차마 차근차근 읽을 수 없었다. 잠깐 훑어보고 이내 덮어버린다. 내가 늘 그런 사람은 아닌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날의 내가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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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여점에 들어간 중학생이 책을 고른다는 명목 하에 두어 권의 만화책을 읽어 버린다. 다음 권 하나를 집어서 300원을 내고 나온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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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마주친 야크(yak) 앞에서 자연스럽게 셔터를 누른다. 옆에 서 있던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민다. 당당히 사진을 지우고 그를 지나친다.
역시 난 쿨하다.
지금보다 어렵고 어렸던 시절일지라도 후회되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군가 언질을 해 주었다면 달리 행동했을 거라 변명을 한들 부끄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그 결과물들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었는가. 그들의 노력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솔직히 말하면, 모든 것에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항상 모든 것에 그럴 자신도 없고. 적어도 그것을 가볍게 여길 생각은 없다. 그들의 몇 개월, 몇 년일지 모른다. 혹 몇십 년일지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들에게는 소중하고 중요할 수 있다. 실제 투입된 시간과 노력이 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을 존중해야만 했다.
물론 곧 잊을 것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