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트망 2024. 1. 24. 08:15

교복에 스포츠머리를 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남자아이들은 여자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교의 기운을 받은 것인지 혹은 어떤 선배의 지도를 받고 와서는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초임이었던 그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신경전에 꽤나 힘드셨을 것이다. 교실을 너무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그럴 거면 청소하지 마라” 했더니 교실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그 꼬맹이들의 행동이 순진함에서 오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무서워하기는커녕 히히덕거린다. 분명 선생님의 분노가 무색하리만치 아무 생각이 없었을 테지만, 인생의 반을 걷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후회와 부끄러움 뿐이다. 그때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적어도 그 기분을 느껴보기로 결심했다면 교실의 풍경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3. 여느 아이들처럼 치열한 날들은 아니었지만 나름 독서실도 다니고 바쁘게 살던 때이긴 했다. 학교에서 서클활동격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때는 심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날이었다. 당시 그 활동은 학생이 학교를 ‘기꺼이’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담임선생님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후 자율학습시간에 교실 밖으로 학생을 불러낸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운동은 다음에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여서. 삼십 분이 흘렀다. 마음과는 다르게 웬만해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학생이 너무나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하기 전까지는. 선생님도 학생도 서로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안다는 건 매우 주관적인 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믿었던 친구로부터의 생각지 못한 배신도, 수십 년 함께한 배우자로부터의 이혼통보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럴 줄 몰랐다.”고 하겠지만, 그럼 어찌할 줄 알았나. 뭘 알기나 했을까.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그냥 그만큼만 알 뿐이다. 그러니 몇 번의 만남이 있다 해서 혹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다.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아는 듯 단정지어 버렸다. 그들과 모든 경험을 함께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다고 자부했다. 그들의 지난날을 본 것처럼 말했고 그들의 미래를 점쳤다. 말 한마디 나눠 보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판단했고 밀쳐냈고 또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사람들이 있을까 두렵다.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른 그 ‘기준’이라는 게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조금 자세히 볼 걸 그랬다. 그게 아니라면 판단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이미 지나간 일 앞에서 ‘만약 그랬다면’이라고 덧붙이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좋다. 서로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야 하겠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럽지 않도록 멀어야 한다. 볼 심산이면 볼 수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을 때는 그 또한 가능한 거리가 딱 좋다. 나는 상대방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리 없다. 상대방이 알아채면 기분상할 일이지만, 그저 내 기준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좋겠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알아야 하는 때가 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안다’고 느껴지더라도 그저 나의 판단일 뿐이다. 실제와의 오차를 위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일은 상대방을 더욱 자세히 보는 일이다. 최종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만큼은 정성을 다해야 한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방향은 오류를 줄이는 쪽이어야 하겠다.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은 그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자세히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다면 판단은 보류다.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세히 안 보면? 안 보이지. 사람은 자세히 안 보면 안 보이는 거야.”

 

자세히 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냥 잠자코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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