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나를 사랑하다

트망 2024. 3. 3. 07:11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건 아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썼느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 대충 있지는 않았다. 더 나아지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을 유지하고는 싶었다. 그 모습 혹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전혀 몰라주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나 자신에게 인정 받지 못했으니까.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켰을 뿐이니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따스히 보듬어 주지 않았다. 자기객관화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따스히 대함이 행여나 우쭐함으로 나타나 타인에게 질타를 받을까 하는 우려에 하게 된 나름의 보호였을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미움이었을까.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힘들고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 힘들다. 성적이 안 나와서 힘들고 놀지 못해서 또 힘들다. 남들보다 좋은 차를 타지 못해 힘들고 남들과 같지 못해서 힘들고 지금보다 더 벌지 못해서 힘들다. 돈을 많이 벌면 또 시간이 없어서 힘들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누구나 힘들다. 놀라운 일이다. 웃긴 일이다. 그래서 장기하의 노랫말처럼 ‘별일 없이 사’는 일이 별일이 된다. 그리고 ‘별일 없이’ 사는 상대방은 또 나를 힘들게 만든다. 웃긴 논리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종인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는 더 조금 움직이기를, 지금보다는 더 간편하기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기를, 더 빠르기를, 더 크기를, 더 많기를, 더 마르기를, 더 새롭기를, 더 더 더. 그런 이유로 세상이 이렇게 편리해졌음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감사하는 바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왜 우리는 앞만 보는가. 뒤로 가는 건 바보고 제자리에 있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적어도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니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없다. 이미 나를 둘러싼 것들, 이미 나와 함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금방 잊는다.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얻는 행위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뒤처지는 것이라고 하니 몸의 방향으로 틀 수가 없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를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애써 거울 앞에 서야 하는데 그건 앞으로 나가는 것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조금 이따 내일 혹은 내년에도 할 수 있다. 나는 어디 가지 않으니까. 몇 초 후의 미래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내년에도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나 자신을 안아 주고 위로해 주라고 한다. 하지만 방법은 모른다. 그래야 할 것 같고 때로는 정말 그러고 싶지만 해본 적이 없다. 가능한 일인가. 유효한 행동인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걱정은 뒷전이고 늘 남 걱정만 하고 살지 않았던가. 훌쩍이는 연예인을 보고, 매출이 감소했다는 대기업 오너를 보고, 비난을 받고 있는 정치인을 보고. 인간적으로 그러한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함께이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을 저 안의 내가 보면 경악할 노릇이다. “그럼 나는?”

 

나를 갈고 닦을 필요는 있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되는 것에 안타까워할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나를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뛸 수 있도록 자신을 연마해야만 한다. 결국 나의 삶이다. 또 그러한 이유로 나 자신을 돌볼 사람도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나의 삶을 나의 고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나를 드러낸다 해도 상대방이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안다 한들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나에게 쏟을 수도 없다. 그 누구도 나만큼 나의 감정에 감응할 수 없다. 그렇다.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다른 이들의 손길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사랑도 전혀 소용없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배려해 주어야 한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할지라도 중간중간 정비가 필요한 법이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야 하는 건 기계뿐이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나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필요한 그것을 끄집어내어 해결할 사람을 찾는 게 나의 일이라는 거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에는 그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수고로움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의 소중함을 알아야 다른 사람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야 타인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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