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 어릴 때도 내 생일에 무언가를 바라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생일이면 꼭 케이크를 사야 하는 것이 아니며, 꼭 축하파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일을 챙겨주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챙김을 받는 건 역시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으니.
그러고 보면 역시 기념일은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며 바뀐 생각인데,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이러했다.
부모님이든 형제든 친구든 배우자든 모두 소중하다. 사실 내가 알고 지내는 모두가 소중하다. 그냥 저냥 만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사라지면 힘들어진다. 그들 모두 나의 힘이다. 그러니 그만큼 잘 대해야 하겠다. 잘 챙겨주고 기분 좋게 말해야 한다. 없어서는 안될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바쁘니까 금방 잊는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만남을 미루고, 해야 할 혹은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지 않는다. 내일이나 모레 하면 되겠지 하면서.
그때 기념일이 힘을 발휘한다. 평소에 소홀했던 건 아니지만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을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결혼기념일이 되면 왠지 그 애정이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그렇다. 멍석을 깔아 줘야 조금 더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기념일을 뭐라 하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국가 기념일도 다 마찬가지로 보인다. 현충일, 개천절, 삼일절, 국군의 날도 그날이 되어야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니까. 물론 학교의 개교기념일, 회사의 설립기념일 등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본다.
내가 기억하는 스승의 날이란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이었다. 다행히도 돈을 갖다 드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아무튼 무엇을 드려야 하나 고민을 아주 약간 했던 날이다. 그렇다고 없던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은 선생님은 좋은 거고 싫은 선생님은 여전히 싫은 거였다.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이뻐했던 선생님, 꾸중을 많이 하셨던 선생님들을 찾아간다. 하지만 나는 찾아가는 선생님이 없다. 죄송한 얘기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어서다. 저분은 정말 선생님이구나 하며 감명을 받았던 분도 없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이다.) 몸은 편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그 많은 선생님들 중에 어느 한 분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지식만은 아니다. 지혜와 인성 등을 선생님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이 혼내도, 아무리 공부를 많이 시켜도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말도 안 될 얘기지만) 혹여 매를 댄다고 하여도 그것이 바로잡음을 위함인지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함인지 역시 알고 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소위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신의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얻는 것? 자신을 무서운 선생님으로 여기는 것? 혹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선생님들은 정말로 ‘성적만 좋으면’ 뭐든 오케이라고 믿었을까?
물론 선생님들도 직장인이다. 직장인에게 사명감을 운운하는 건 좀 이기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명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나는 선생님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삶이란 항상 책임과 욕망 사이의 줄타기인지라 대의에 뜻을 두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서도, 그런 욕심을 갖는다.
모든 선생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 혼란스러운 시기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자체로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매해 있는 스승의 날이 학생과 선생님에게 조금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바람이 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0) | 2024.03.15 |
---|---|
발상의 전환 (2) | 2024.03.15 |
언제나 공부가 필요한 세상에서 (2) | 2024.03.05 |
나를 사랑하다 (0) | 2024.03.03 |
배움에 목적이 있다면 (0) | 2024.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