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언제나 공부가 필요한 세상에서

트망 2024. 3. 5. 05:10

초등학생(실은 국민학생이었다…) 시절은 너무나 즐겁기만 했다. 굳이 논길로 들어가 길 아닌 곳으로 학교에 간다. 짧은 거리였지만 나름 할 게 많았다. 등하굣길 중간에 있는 곳집(상여와 그에 딸린 도구를 넣어 두는 창고 같은 곳)에 귀신이 산다는 아이들 사이의 소문을 듣고 두려운 마음에 냅다 뛰어 지나간다. 안개가 자욱한 가을 아침, 늘어져 있는 풀에 앉아 있는 잠이 덜 깬 듯한 잠자리를 살짝 잡아 옷에 앉게 하고는 학교까지 걸어간다. 날개가 젖어 있어 당장은 날아가지 못하니까 왠지 나를 따르는 느낌을 받으며. 학교에 가는 동안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하면 날개가 마른 잠자리들은 하나 둘 날아가 버린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에 가방을 두고 운동장을 누비고 다닌다. 수업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사이사이 쉬는 10분이 즐거울 뿐이다. 학교가 끝나도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축구든 야구든, 그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즐긴다. 집에 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가방을 던져 두고는 동네 어귀로 나가 친구들을 만난다. 말뚝박기, 한발뛰기, 숨바꼭질…. 몇 가지 안 되는 그 놀이를, 우리는 하루종일도 할 수 있었다. 어두워진 동네에서 하는 숨바꼭질은 아주 스릴있다.

 

운이 좋게도 초등학생 시절은 그저 놀기만 했다. 신나게 놀다 보니 중학생이 되었고 또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의아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도대체 공부는 왜 하는 걸까.

 

가고 싶은 대학이 없었다. 무언가 크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게 없었다. 되짚어 보면 중학교 3학년 때도 어서 졸업하여 돈이나 벌자 하는 마음에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를 가고자 했었다. 물론 아주 굳은 결심은 아니었는지 부모님의 한마디에 돌아서기는 했지만.

 

삼 년 동안 뭔가 의욕을 일으킬 만한 사람을 만나지도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부라는 이미지는 여전했다. 공부는 그냥 공부다.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학교라는 곳도 모두가 가야 한다기에 가는 거지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다니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설명이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의아한 건, 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 건지 설명 한 톨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거다. 2021년 기준 전국 초중고생 수가 595만 명이라고 한다. 그중 자신이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아는 학생은 과연 몇 명이나 될런지 의문이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들어 본’ 학생은 또 몇 명일지도. 아이들의 질문을 막지 말고 친절히 대답해 주라는 메시지는 유튜브를 비롯 매체마다 봇물 터지듯 나오지만 정작 주변에서 그리 친절한 어른을 본 기억은 어쩌다 한 번이다. 하긴 법이든 휴대폰 약관이든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나마 나름 대우를 해 주는 건 가전제품들의 설명서 뿐이다. 작동이 되지 않으면 ‘플러그가 꽂혀 있는지부터 확인’하라고 정말 처음부터 알려 주니 말이다.

 

다시 공부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공부를 시킨다면,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어떤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어야 한다. 활활 타오르든 살랑살랑 피어오르든 납득하도록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럴 나이니까 당연히 학교에 가야 한다’던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은 그냥 압박일 뿐이다. 당장 내가 그런 취급을 당한다면 욕부터 내지를 것 같다.(그럴 것 같다는 거다.)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무엇이든 알아야 할 수 있지 않은가. 공부도 연습도 않고 보자마자 혹은 듣자마자 아니면 그런 상황이 되자마자 잘할 수는 없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해도 처음에는 잘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응이 빨라질 수는 있다. 때로는 하나의 공부가 다른 것에 응용되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항상 공부할 수 있고 또 공부해야 한다. 한 자리에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공부하는 자세가 늘 필요하다.

 

왜 필요한지, 당사자의 입장을 조그만 더 헤아려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의 나처럼, 정말 아무 생각없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쉬워하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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