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사랑과 상처의 역학관계

트망 2024. 2. 18. 23:27

오늘도 당신과 나는 누군가로 인해 아니, 엄밀히 말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마음이 다치면, 당신과 나는 짜증을 낸다. 화를 낸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상처를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아물 수는 있지만, 지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를 없던 일처럼 만들 수는 없다.

 

관계는 어느 정도의 상처를 동반한다. 친구, 형제, 부부, 직장동료 누구든 마찬가지다. 자의든 타의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어떤 규칙과 약속으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규칙과 약속을 구성원 모두가 철저하게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간의 귀찮은 마음이, 본질적인 악랄함이, 개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칙이라는 것은 때때로 아니, 종종 당신의 것과 나의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심이든 실수든 오해든 우리는 어긋나게 되어 있다.

 

관계라는 건 믿음 혹은 기대를 동반한다. 믿음이 생겨 관계를 맺는 건지, 관계를 맺다 보니 믿음이 생기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각자의 미래를 맡긴다. 반드시 그러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렇게 상처의 씨앗이 생긴다.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살펴보면 그 현상을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둘의 상대에 대한 믿음은 얼마나 단단한가. 서로에 대한 기대는 얼마나 높은가. 그리고, 나의 기대와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로 인한 상처는 또 얼마나 깊을 것인가. 진심이든 실수든 오해든.

 

결국 상처는 관심과 사랑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러니 사랑하면서 늘 행복할 거라는 상상은 꿈과 환상의 영역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것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늘 필요하지만, 절대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알고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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