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발상의 전환

트망 2024. 3. 15. 22:10

공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도치 않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헤집는 경우도 많다. 눈을 감으면 (실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치 영상처럼 (당연히 보이는 건 아니다.) 어떤 장면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을 때 특히 그렇다. 흥미로운 것에만 집중하느라 쉬었던 머리가 이제서야 도는 느낌이다.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무언가에 대한 행동지침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가 반드시 실행해야지 하는데 그렇다고 실행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휴대폰에서 메모장 하나 열지 못하고 자 버리고 만다. 그런 류의 것이 떠올랐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아침을 맞는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 뛰어나길 바란다. 세상에 없는 것을 바란다기보다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놀이든 일이든 관계든 상상력은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조금씩 비틀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전과는 다른 생각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아야 또 다른 결과물을 볼 수도 있고 때론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판에 박힌 것을 싫어한다. 맨날 하는 같은 것을 아주 지루해 한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다. 언젠가 사무실로 가는 경로가 늘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골목골목 돌아서 가 보기도 했다. 계단을 오를 때 늘 오른발이 먼저인가 싶어 의도적으로 왼발을 올려보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조금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조금 더 확실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판에 박힌 그걸 더 잘한다. 금방 익숙해진다. 일단 손에 익으면 늘 하던 그것을 어기는 법이 거의 없다. 해야 할 일을 주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단 해 내야 마음이 편한 부류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좀 불만이기는 하다. (내가) 잘하는 걸 (내가) 좋아하도록 (나를) 만들었으면 좋지 않은가.

 

훈련을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했다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며 이루지도 못할 상상을 한다. 그리고 불만을 쏟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핑계를 좀 만들어 내야 하겠다.

 

그 핑계 중의 하나는 ‘원래’ 라는 말이다. 내가 사용하지 않으려는 단어 몇 개를 꼽을 때 반드시 들어가는 말이다. 도대체 원래는 어느 때부터인가? 전부터 그리 하였다면 다음에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 단어는 할말이 없거나 귀찮다는 표현밖에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 도대체가 설명할 의지가 전혀 없다. 왜 그리 말을 돌려대는지.

 

그러니 새로운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원래 그런 거니 그렇게만 하면 된다. 원래 그렇다니까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들어주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도 굳어가는 거다. 그래,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다.

 

하지만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모르지만 분명 이유가 있었다. 타당한지 여부와는 상관 없이. 그러니 ‘원래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고 이유를 찾자.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면 ‘원래’ 그랬던 그것을 바꾸면 되고, 말이 되는 이유라면 ‘원래’ 그러고 있던 그것에 힘을 실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억지로 막지 말자. 누군가의(나 자신이라도) 발랄한 생각을 그대로 두자. 들어 주자. 오만 가지 잡다한 것들이 한가득 쌓이는 중에 무의식 중에 만들어 두었던 틀이 깨질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란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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