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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저 멀리 마주오는 사람을 발견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확신에 가까운 감이 온다. 이대로라면 저 사람과 나는 부딪힐 것이다. 경로를 바꾸고 싶으나 주변 모든 이들의 경로를 예상해 보건대 우리가 마주할 때까지 다른 공간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다가 마주하는 순간 어깨를 틀어 내가 속한 공간을 좁힌다. 하지만 상대는 그대로 앞을 보고 걸어 지나간다. 부딪히지 않았지만, 부딪혔을 때보다 기분이 나쁘다. 에잇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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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뒤쪽에 있던 사람이 그 좁은 통로로 카트를 밀고 나온다. 카트와 계산대 사이에 끼인 내 엉덩이를 긁으면서. 불쾌감에 뭐라 한마디 했더니 되려 내게 큰소리다.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화가 차오른다.
화를 낸다. 욕을 한다. 길에서 음식점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사실 화를 낸다고 그 상황이 해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낸다. 그렇다면 나는 왜 화를 내는 걸까.
화가 나는 건 지금 상황이 내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길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화를 ‘내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을 기대하고 화를 내는 것일까?
화를 내는 건, 일차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 그것보다는 저것이 좋다 말하는 것이다. 즉 나를 알아 주길 바라는 행동이다. 그리하여 나의 뜻대로 이끌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 위해 화를 낸다.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찾는다. 이왕이면 큰 소리로. 혼쭐을 내 주고 싶어서.
언제든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건 다른 얘기다. 나의 화냄이 과연 옳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의 목적은, 화를 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화내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는 없을까. 그 전에, 내가 화를 냄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